랜선집사 도전기_1 식물학 워너원

In Journal, Urba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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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식물을 키워보겠다고 다짐한지도 약 한 달, 아직도 내 책상엔 화분 하나 없다. 의지박약, 결정장애인 나에게는 집 앞 꽃집에서 화분 하나 사오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잘 키울 자신도 없을 뿐더러, 슬쩍 꽃집을 들여다보니 식물 종류는 또 왜 이리 많은지. 비슷비슷해 보이는 초록 덩어리들에 저마다 다른 이름표가 붙어있다. 게다가 날도 슬슬 추워지니 식물도 잘 안 자랄 거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내세우며, 전기장판 안에서 귤이나 까먹고 싶어진다. 휴일에 빈둥대다가 앱스토어에서 발견한게 바로 Botany101, ‘식물학 워너원’이다.

에디터 이참의 랜선집사 도전기


 

 

뭐 대충 식물을 키우는 게임 같은데, 일단 무료게임이라는 점과 귀여운 픽셀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 제목부터 병맛 향기가 풍겨오지만 일단 진지한 마음으로 식물 키우기에 임한다.

 

글씨가 돋움체라는 거부터 하나도 안진지할 거라고 예측했어야 했다. ‘식물을 다루는 힘=세상을 지배할 힘’ 이라는 말이 괜히 거창해서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냥 별 생각없이 게임 스타트! (일단 시작은 하고 보자)  일단 튜토리얼로 게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뻔한 지식이지만)실제로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할 것 같은 요소들이 게임 셋팅에 들어가있다. 물, 햇볕, 강화(?!)와 e러닝까지. 화분을 침범해 온 잡초를 뽑아줘야한다는 내용도 있다. 기본적인 설정은 Day7(=레벨 7)이 되면 식물이 다 성장해서 수확을 해줘야 한다는 건데, 과연 연쇄식물킬러인 내가 수확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쁘게 꽃이 필 걸 상상하며 일단 애칭도 ‘퐁퐁이’라고 지어줬다.

 

타-단! 귀엽게 잎사귀가 난 퐁퐁이다. 게임 속 다짐이 꼭 내 얘기같다. 드디어 식물을 기르게 되었다. 정말 열심히 키워봐야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물! 버튼을 누르니까 퐁퐁이 화분 크기의 구름이 나와 비를 뿌린다. 햇빛 버튼으로 퐁퐁이가 광합성을 잘 할 수 있게 커튼을 열어줬다. 퐁퐁이의 양분이 뺏기지 않도록 잡초도 후딱후딱 뽑아줬다. 퐁퐁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1초. 2초. 응?

 

으앙 듀금… 처음이라 내가 물을 너무 많이 줬나보다. 실제로 식물을 기를 때도 과습, 고인물을 가장 주의 해야 한다던데. 이런 간단한 게임에 이렇게 고증이 잘 되어 있다니 좀 재밌네. 다시 심기일전 해서 키워보자.  햇볕을 쬐주고, 아까는 물이 너무 많았으니까 물은 조금 덜 줘보자.  1초. 2초.

 

 

 

뭐야? 아까는 물이 너무 많았다고 한 것 같은데. 나는 졸지에 식물계에서 가장 잔인한 말려죽이는 사람이 되버렸다. 적당히 줬다고 생각했는데 물이 너무 모자랐나보다. 과함과 부족함의 중간을 맞추는 일은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어렵다. 진짜 살아있는 화분을 사왔으면 큰일날 뻔했다.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다시 키워 본다. 그런데,

 

죽고, 죽고, 또 죽고. 이건 뭐 식물이 아니라 개복치 수준이다. 준 적도 없는 비료가 많아서 죽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외출해 있는 동안 줄기가 꺾여서 죽고, 잡초가 많아서 죽고… 이건 뭐 식물 키우기가 아니라 식물 죽이기 게임인 것 같다. 근데 하나 같이 실제로 식물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라 뭐 어떻게 반박할 수도 없다. 그만 부들부들하고 그냥 공부하는 셈 치고 오기로 게임을 계속 해봤다.

역시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배달의 민족 이 아니고 의지의 민족이다. 1초라도 눈을 떼면 개복치처럼 죽어버려서, 눈도 깜빡안하고 부지런히 키워보니 어느새 레벨2까지 무럭무럭 자랐다. 역시 세상에 노력하는 사람 앞에 안될 일이란 없는 거다. 이정도면 진짜 화분을 하나 길러봐도 좋겠다는 근자감이 쑥쑥 자라난다. 어떤 식물이 좋을까? 잎사귀가 커다란 것도 좋고,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선인장도 좋다. 이왕이면 꽃도 피는 애였으면 좋겠다. 개복치 식물을 2단계까지 키울 실력이면 한겨울에 꽃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으쓱 그런데,

아니…뭐….어쩌라고 (말잇못).  억울하지만 뭐 어디다가 따질 데도 없다. 똥손인 내 손을 탓해야지. 이제 막 솟아 나려던 의욕도 사라지고 꽃집에 화분을 사러 가려던 마음도 날라갔다. 후..(깊은 빡침) Botany 101 은 식물을 키우기가 아니라 식물 죽이기 게임인 걸로 마무리를 짓겠다. ‘키우기’라면 말도 안되는 게 게임 안에 ‘죽음 기록실’이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죽음 카드를 다 모으면 끝나는 게임이 아니었을까?

하여간에 나는 더 이상 마음이 아파 식물이 죽는 건 못 보겠어서, 이 게임은 이쯤 접어두기로 한다. 동시에 화분을 사고 싶은 마음도 고이고이 접어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겠다. 오늘도 식물 집사의 꿈은 물 건너갔다. 다음에는 쉽게 죽지 않는 정말 ‘키우는’ 게임을 좀 알아봐야겠다. 과연 에디터 이참은 화분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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