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시공(時空)_2

In Place, Urban Nature
아래로 내려보기

보살핌으로 자라나다 _ ‘성수동 푸르너스 가든’

 

 프롤로그에서도 우리가 왜 식물을 키우는 지에 대해 인류니, 통제권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로 소설을 써봤지만, 여전히 더 사소한 이유들이 궁금하다. 다른 사람 말고 ‘나’는, 혹은 ‘너’는 왜 식물을 키우는 걸까.

 

 나에게 식물은 어떠한 의미라기 보다는 ‘엄마의 물건’이었다. 어렸을 때 했던 꽃집을 정리하며 남는 화분들을 집으로 잔뜩 들여온 순간부터 우리집에는 화분이 끊이지 않았다. 베란다의 일부분, 볕이 가장 잘드는 창틀마다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자리잡았고,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거실까지 화분들이 침범했다.

나는 걔네들이 싫었다. 분갈이를 할 때면 온 베란다가 흙투성이에, 이따금 생기는 벌레들이 널어놓은 빨래에 들러 붙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매번 호들갑을 떨며 꽃이 피었다고 보라고 하는 게 싫었다. 꽃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종의 한계가 있어 그리 화려하지도 않았다. 말도 못하고 개나 고양이처럼 애교도 부리지 못하는, 교감이라고는 없는 걔네들은 나에게 그냥 ‘초록 덩어리’일 뿐이었다.

 

푸르너스 가든은 우리집 베란다를 닮아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다 비슷비슷한 식물들이 이곳저곳 눈을 돌리는 곳마다 가득하다.  ‘살아있다’고 말하기에 나와 거리가 너무 멀어보이는 초록물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서울을 벗어난 것처럼 고요하다.

 

손톱만하게, 주먹만하게 꽃이 피어있는 걸 카페 주인이 와서 사진을 찍어간다. 엄마가 카카x톡 프로필 사진에 해놓은 빨간꽃이랑 비슷하다. 사실 꽃이란 게 내 눈엔 다 비슷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삭막해진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의욕이 사라지는 때가 있었다. 딱히 이유도 없고, 그래서 탈출구도 없는 무기력감에 빠져있던 날. 산책을 나가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새로 개업한 꽃집이 있어 가봤는데, 홍보차원에서 다육이 화분을 나눠주고 있었다. 얘는 ‘은행목’이에요.

집에 와서 엄마의 화분이 가득 놓인 사이에 ‘나의’ 작은 화분을 놓고, ‘뚜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터넷에 은행목을 검색해봤다. 한 달에 한 번 물을 흠뻑 주면 된다는데 또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 댄다. 대체 얼만큼이 적당한 흠뻑인지 한참을 고민하며 조금씩 물을 부어줬다. 잎사귀가 단단한 게 건강한 거라고 하길래 틈 날 때마다 잎사귀를 만져보고, 조금 물렁해졌다 싶으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서툴러서였나, 뚜비는 얼마 못가고 시들시들하다가 죽었다.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제서야 엄마의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째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허브농원에서 사왔다는 새 화분들, 직접 씨앗을 심어 제법 자라 난 커피나무, 봄 볕을 받아 꽃이 핀 아이들까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그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묵묵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람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

 

 푸르너스 가든의 한 쪽 벽면에는 직접 네임펜으로 그린 설계 도안이 그려져있다. 이 정원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했는지 한 눈에 보인다. 나에게는 그냥 초록색덩어리일 뿐인 식물들이었는데, 마음을 다해 심어둔 그들은 누구에겐 의미가 되고, 휴식이 된다. 그 보살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결국 나를 돌보는 일

 

식물을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귀찮고 어렵고, 지루한 일이다. 당장 가까운 보람을 얻기에 식물은 너무 느리게 자란다. 하지만 누군가가 잘 가꿔 놓은 정원에 들어와보면 알게 된다. ‘당장’은 아니어도, ‘결국’엔 얻을 수 있는 휴식을.

물주기, 햇볕 쬐어주기, 흙을 갈아주거나 비료 주기.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이 점점 줄어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단순한 생을 사는 식물은 특별한 의미를 준다. 저예산 게임처럼 옵션이 몇 개 없다. 그 단순함이 주는 특별한 유대감은 나와 식물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그를 돌본다는 것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 되는 것이다.

 

 

Facebook Comments

Submit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